닭바위

홍천자료실

닭바위

관리자 0 1,509 2020.03.31 13:04

닭바위

                                                    문화원 사무국장 김 병국

행정상으로 홍천읍 갈마곡2리, 강 건너를 홍천에 사는 사람들중 30대 이상이면

누구나 “닭바위”라고 불렀을 것이다.

홍천의 전설과 효열(홍천문화원 발행)이란 문헌에 보면 1925년도 어느 여름철 장마비가 내려서 집은 물론 가축들이 떠내려가는데, 떠내려가던 닭 한 마리가 물 위에 솟아난 바위 끝에 앉아서 살려달라는 듯이 “꼬꼬댁 꼭꼭  꼬꼬댁 꼬꼬”울어댔다고 해서 그 마을를 닭바위 동네라고 했으며 말하기 쉽게 그저 “닭바위“ 라고 한다

나는 지금의 희망4리 구 인정식당자리에서 자라다 1956년쯤 진리로 이사를 와 살았고 여름이되면

닭바위 앞 강 새미장(사미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그렇게 불렀음)에서  동네 친구들과 미역을 감았다. 그 당시는 모래 사장이 양쪽에 넓게 펼쳐져 있어서 우리들의 해변가나 다름 없었다. 새미장은 여름철이면 익사사고도 많이 나던 곳이다.

그때는 교량이 없는 탓에 겨울에는 강이 얼어 붙어 섶다리를 설치 해 다녔고, 얼음이 녹으면 동면,검율리, 닭바위 동네 사람들은 닭바위 동네에서 운영하는 배를 타고 건너야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일년에 쌀을 한 말씩 거두어 배삯으로 주었고, 동네 사람이 아니면 50원인가? 돈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장날이면 장을 보고 배터에서 배가 건너 오기를 기다려야 했고, 뱃사공이 못 들으면 어이! 어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뱃 사공을 부르는것을 보기도 했다.

배가 오면 모두 배에 올라 앉고 뱃 사공은 땅에 닿은 배를 떠 밀고는 얼른 배에 올라 노를 젖기 시작한다. 천천히 미끄러져가는 듯하지만 한 길도 안되는 물속을 내려다 보면 꽤나 빨리 움직임을 느낄수 있었고 깨끗한 모래와 물고기들의 동향을 볼수가 있었다. 손을 뻣쳐 물에 담그면 시원함을 느낄수 있었으며, 가운데 앉은 어른은 배에 새어들어 오는 물을 바가지로 퍼내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여름철 장마가지면 배를 띄울수가 없어 닭바위 동네사람들은 물론 동면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물이 줄어 배가 띄울수 있을 때까지 3~40리나되는 연봉다리를 건너 학교까지 등교를 해야만 했다.

뱃사공이 없을 때면 학생들은 책가방과 옷을 벗어 머리에 얹고 강을 건너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고

어떤 학생은 옷을 물에 떨어뜨려 친구이 깔깔대고 웃어대는 재밌는 광경도 보았다.

닭바위엔 시골 정겨움이 넘치는 물레방앗간도 있었다. 방아를 찧던 안찧던간에 시원한 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50년대 말 겨울은 괭장히 추어서 강물이 꽁꽁 얼어 붙었고  친구들과 발구(썰매)를 가지고나가 놀았는데 나는 외 발구를 타다가 뒤로 나가 자빠져 뒤통수가 깨질뻔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추운 겨울에도 동네 아낙네들이 나와 빨래를 하는것은 의외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따스한

샘물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물은 따듯하지만 위가 추어서 비닐로 사방을 막아 바람막이를 하고 그래서 온 동네가 함께 쓰는 빨래터도 있었다. 그 뿐만아니라 지금은 볼수 없지만 빨래를 양잿물에 삶기위해 커다란 솥을  걸고 장작을 지피는 광경도 볼수 있었다. 지금 기억속에는 전문적으로 빨래를 삶아 주고 돈을 받기도 했을 것 같아 그 동네 어른들 한테 물어 보았더니 맞다고 하셨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을 따라 밥을 싸가지고 간적이 있는데 어딘가하니 지금의 소방서를 못 미쳐 약수가 나는 곳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커다란 소나무가 있고 거기도 샘물이 나는 곳이 있다. 거기는 무속인들이 이른 새벽에 불공?을드리는 곳이라고 알았고 주위엔 쌀알이 떨어져 있는것을 보았다. 우리 일행은 가지고 간 밥을 맛있게 먹고 내려온 기억도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다. 이외에도 다른 특별한 것이 없었을까?해서 토박이 친구들한테 물어 보았더니 옷받지라고 해서 차가운 샘물이 나는곳이 있었다고 한다.

위치는 지금의 동면가는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논이었는데 옷이 올라 가렵다든가, 피부가 좋지않아 가려울때 옷받지에 와서 몸을 담그면 깨끗하게 낳았다고 한다.

50년이 지난 닭바위는 너무 많이 변했다.

우선 그때는 연봉이 그렇게 멀었었는데 외각도로로 인하여 가까와 졌고, 시내를 통하여 인제,속초방향으로 가야했던 길이 외각도로로 인해 갈마곡2리 닭바우를 중심으로 새로이 생겼다. 홍천종합병원이 들어섰고 토지 거의가 논,밭으로 넓었던 평야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상가로 변하였다. 무엇보다도 변 한것은 여중학교가 닭바위 동네에 들어섰고 교통 혼잡으로 인하여 주 통행 교량외에 교량을 하나 더 건립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땅 값은 여간 비싸지 않아 조상 잘 만난 덕에 졸지에 갑부가 된 사람도 많다.

이렇게 변모한 닭바위의 옛 모습은 태를 버린 사람들만 알고 있겠지만 지금의 와서는 역사의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다. 앞으로는 시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변하는 과정을 순간순간 기록하고 간직하는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3-06-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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