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110여년전 홍천군 동면 좌운리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개한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3형제 분이셨는데, 둘째분으로 18세에 결혼을 하자마자 오막살이집 한 채와 논 5마지기, 송아지 1마리를 받아 가지고 분가를 하셨다고 한다. 작은 할아버지는 지금의 원주시 소초면 홍양리에 사는 친척 부자집으로 양자를 가서 여유롭게 잘 사셨다.
나의 할아버지께서 전해에 흉년이 들어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셨는데 농사철은 다가오고 춘궁기가 닥쳐와 고심을 하고 계시던 차에 원주로 양자간 동생한테 가면 양식을 얻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 끝에 다음날 새벽에 홍양리로 길을 떠났다. 동면 좌운리에서 소초면 홍양리까지의 거리는 약 90리 정도되는 거리다. 그러니까 당일로 180리 길을 왕복하는 거다. 동생네 집에 도착하니 온 식구가 반갑게 맞아 주고 점심을 해 주셨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식량을 얻으러 왔다고 말하니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능력껏 가져가라고 했다. 쌀 3말 정도를 자루에 넣어 질빵을 해서 짊어지고 오려는데 주위 식구들은 자고 내일 가라고 하였으나 다음날이 갈 꺾는 날이라 오늘 꼭 가야한다고 하며 길을 떠났다. 좌운으로 돌아오는데 중간쯤에서 날이 완전히 어두어졌다. 횡성군 공근면 부창리 어영골 쯤 오고 있을 때 저쪽 골짜기에서 움직이는 왠 불빛이 보이더란다.
할아버지는 인기척을 해도 반응이 없어 산짐승의 눈빛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연실 담배를 피우며 걸어 냇물이 있는 돌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돌다리를 건널 때 뒤따르던 산짐승은 물로 텀벙텀벙 소리를 내며 건너 가더니 길 옆에 딱 버티고 서서 노려 보았다. 산짐승 눈에서는 시퍼런 불빛이 비쳐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을 하고 “점잖은 영물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느냐?”하면서 타일렀다. 그랬더니 산짐승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약을 올리더니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오다가 또 돌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 부근에 친척이 사는 외딴집이 한 채 있어 그집에 가서 광솔 불을 얻어 길을 밝히고 올 생각으로 주인을 찾으니 친척 식구들은 곤히 잠에 빠져 있어서 싸리문을 흔들며 소리 지르니 겨우 일어났다. 놀란 친척은 밤중에 어딜가냐며 자고 가라고 붙잡는걸 내일 일할 일꾼을 얻어 놓아서 안된다며 돌다리 건널때 밝힐 광솔 불을 붙여 달라 하였다. 친척은 광솔에다 불을 붙여 주고 조심히 가라고 하였다.
불을 밝히고 길을 떠난 할아버지는 얼마 못가 돌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이미 산짐승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돌다리를 중간쯤 건널 때 갑자기 아랫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불이 꺼졌다. 불꽃은 꺼졌어도 불똥이 남아있어 겨우 돌다리를 건너고 주위를 살피니 산짐승은 또 다시 사라졌다. 새벽녘이 되어서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가 마루에 삽자루를 내려 놓는 동시에 앞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집에 가보니 왠 짐승이 개를 물고 갔다고 하였다. 할아버지와 온부락 청년들이 그 집 마당에 모여 산짐승을 추적 하기로 하였다. 산에 올라가니 짐승이 먹다 남긴 개가 있었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마저 먹을것을 생각하며 개의 몸에 ‘설비상’이라는 독약을 바르고 기다렸다. 어느날 아침 산제당골이 떠나갈듯 한 짐승이 악쓰는 소리가 들려 산에 가니 호랑이가 쓰러져 ‘어흥’거리며 발악을 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쓰러져있는 호랑이를 잡아 산에서 내려와 고기는 나누어 가고 뼈는 약재로 팔고 가죽은 말려 팔아 가난을 이겼다고 한다.
(홍천신문 발췌)
13-06-10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