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명 큰효자정문(남면 유치리)

홍천자료실

이희명 큰효자정문(남면 유치리)

관리자 0 1,357 2020.03.31 13:02

지금부터 약 2백여년 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르면 태백산맥을 등줄기로 하여 요리조리 뻗어나간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마을에 이희명이란 소년이 살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님을 도와 논과 밭에 나가 김을 매거나 산에 올라 나무할 때에도 시간을 내어 서당에서 배운 글을 중얼거리며 복습도 하고 넓적한 바위 위에다 칡덩굴을 뜯어 글씨를 써가며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이 소년은 몸도 마음도 바르고 성실하게 자라 19세의 어린 나이에 나라에서 치르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였다. 그의 인품은 온 나라 안에 떨쳤으며 27세 되는 해에 호조참판이란 높은 벼슬에 올랐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나라의 큰 일을 맡아 백성과 임금님을 위해 밤낮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던 중, 시골에 사시는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임금님께 고향에 돌아가서 아버지를 간병할수 있도록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그의 덕행과 인품이 뛰어난지라 나라의 일을 맡아 계속 일할 것을 거듭 부탁하였으나, 너무나 효성이 지극한 희명 참판의 굳은 마음을 임금님께서도 꺾지 못하시고 갸륵한 효성심에 탄복하시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높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병환을 극진히 보살펴 드렸으나 날이 갈수록 효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의 병은 날로 더 심해만 갔다.

 매일 같이 새벽을 알리는 첫 닭 울음소리와 함께 자기집 골짜기에 언친바위가 있는 5리 길을 올라가 꽁꽁 언 얼음을 깨고 삼탕(바위가 두멍 같이 3개가 패여 있는 샘물) 맨 밑의 탕에서 목욕을 하고 중간탕에서 세수를 한 다음 맨 위에 있는 옷탕에서 정화수를 떠서 언친 바위에 놓고 기도를 드린 다음, 날이 새면 약을 구하기 위하여 깊은 산골짜기와 눈보라가 매몰차게 몰아치는 들판을 헤매던 중 어느 외딴 곳에서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을 만나 엄동에 3자3치가 되는 잉어를 잡아 푹 삶아서 아버지에게 드리면 곧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효자 희명은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도 마다않고 30리길이 넘는 용수골로 달려가 겹겹이 언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약을 해드렸으나 아버지의 병환은 차도가 없어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한숨을 쉬다가 마지막으로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붉은 피를 아버지의 입 속에 넣어 드렸다. 그 순간 희미한 등잔불만이 켜진 어둔 방에 번쩍 번갯불 같은 불빛이 터지더니 낮에 외딴 곳에서 만났던 그 노인이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긴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서 말하기를 “너의 효성이 지극하여 내가 하느님의 명을 받아 너에게로 와서 이르노니 너무 걱정 말아라” 하면서 사라지는 찰나, 정신을 잃고 죽음만을 기다리시던 아버지께서 “희명아! 밖에 누가 왔나보다” 하시면서 식어진 아버지의 가슴에 따스한 훈기가 돌며 아버지의 일그러졌던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눈을 뜨셨다.

 이 소식이 온 마을에 전해지고 전국에 퍼져 가두독 마을에 효자가 탄생했다며 온 마을이 떠들썩 하였다.

 그후 임금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크게 상을 내리시고 효자 희명에게 격려를 하였으며 벼슬길에 다시 오르라는 명을 내리셨지만 한사코 마다하고 아버지가 80세가 넘어 늙어 돌아가실 때까지 공경하며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홍천신문 발췌) 


13-06-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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