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군(郡) 역사의 시대사적 개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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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郡) 역사의 시대사적 개략

관리자 0 1,283 2020.03.31 12:05

홍천군(郡) 역사의 시대사적 개략

 1) 선사시대
 홍천지방에는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높고 낮은 산들이 동서남북으로 솟아 있고 깊고 얕은 골짜기에서는 짧고 긴 강들이 흐르며 그 강 유역에는 크고 작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홍천은 선사시대에 우리 인류들이 생활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1992년 북방면 하화계리 발굴조사에서 중석기시대의 유물인 석기가 대량으로 발굴된 것을 보아 홍천강 유역의 인류들은 이미 중석기시대부터 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이른바 신석기문화를 형성하였다.
 홍천지방은 중석기 시대부터 시작하여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더 나아가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돌로 만들 것뿐만 아니라 흙으로 토기를 만들게 되었고,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하면서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홍천지방은 고대 맥국의 영토권에 속하였으며, 점차 백제 권의 영토가 되었다.

 2) 고대
 홍천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 백제 . 신라 3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그 소속을 달리하였다. 고구려 영토일 때 벌력천현(伐力川縣)이었던 홍천은 신라 경덕왕 16년(753년)에 록효(錄驍)로 개칭하였고, 삭주(朔州) 지금의 춘천의 속현이 되었다. 이때 강원도 지방에는 삭주와 명주가 설치되었는데 삭주는 북원경(원주)과 가평군, 양천군, 연성군, 대양군, 익성군, 정천군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록효현, 횡천현, 난산현 등 속현으로 하였다. 위와 같이 경덕왕 때에 록효현으로 개칭되어 삭주의 속현이 된 홍천지방은 고려 현종 9년(1018)에 오늘날의 명칭과 같은 홍천현이 되었다.

 3) 고려시대
 태봉국의 궁예를 추방하고 왕위에 오른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하여 통일왕국을 성립하였는데 이때 홍천지방은 자연스럽게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려 성종때 전국을 12목으로 분할하고 북쪽 국경지역을 동북 면과 서북 면으로 나누게 되었는데 이때 홍천은 동북 면에 속하게 되었다.
 성종 12년(995)에는 전국을 10도로 분할하였는데, 삭방도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수차례 변천이 있었는데 현종때 양계 제도가 정립되어 교주도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홍천의 명칭은 신라때 사용하던 록효현에서 지금의 지명인 홍천으로 개칭되었다.
 공민왕 15년(1366)에는 종전의 명칭인 교주도와 강릉도를 합하여 교주강릉도로 하였으므로 홍천현은 교주강릉도의 소속이 되었다.

 4)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1395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였고, 홍천현은 강원도 홍천현이 되었다. 홍천현은 원주목의 관할로 되어 원주목사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452년 당시 홍천 현은 종육품인 현감이 관할하였으며 444호에 1,211명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홍천현에 있었던 군인들이 220명인 것으로 보아 강릉, 춘천, 원주 다음의 큰 군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커다란 행정변화가 없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선후기 영조시대의 자료를 보면 원주목에 속하였던 홍천현이 원주 진관소속 홍천현이 되었고, 홍천현내에는 9개면, 30개 리로 되어 있으며 3,107호에 9,232명이 생활하였다.

 5) 근대
 1895년 500여년이나 지탱하여 오던 팔도제도를 폐지하고 23부 제도를 시행하는 지방행정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이때 홍천현은 홍천군으로 되어 춘천부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23부제도는 1년 2개월만에 폐지되고 1896년 8월 4일 칙령 제 36호를 반포하여 13도 8부 1목 331군 제도를 실시하여 새로운 지방행정제도를 시행하였는데 이 때 홍천군은 춘천부의 소속이 아니라 강원도의 하부조직으로 지방행정 단위가 되었다.

 6) 일제 강점기
 1910년 9월 30일 조석 총독부 관제를 제정하면서 지방관제를 칙령 제 357호로 공포하였다. 이 규정에 따라 강원도에는 25군이 되었으며, 홍천군은 25개군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홍천군 안에는 9개 면에 97개 동. 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신구대조 조선전도 부 . 군 . 면 . 동 . 리 명칭일람」에 의하면 군내면의 동막리를 와동리로 하였고, 연봉리 일부를 금물산면 하오안리에 편입하였다.
 내촌면의 괘석리를 광암리로 하였고, 영귀미면의 삼현동 일부와 방량동 일부를 합하여 삼현리라고 하였고 방량동 일부와 삼현동 일부를 합하여 방량리로 하였다.
 감물악면 굴업리에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분지리 일부를 편입시켰으며, 반곡리 일부를 길곡리에 편입시켰다
 북방면의 중화계리 일부를 하화계리에 편입시켰으며 이후 1945년 해방 때까지 큰 변동은 없었다.
 일제의 이러한 일부지역의 변동은 조선 후기 동학농민 운동과 3 . 1운동 때 치열하게 활동하던 지역의 독립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7) 해방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한 후 홍천은 국토 분단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지역으로 38선 이남 지역의 행정구역 개편시 인제군 기린면의 진동리와 북리의 일부, 인제 면의 원대리, 남면의 부평, 어론, 김부, 신월, 정자, 갑둔, 신풍 등 7개 리를 편입하여 신남면을 신설하고, 인제군 내면을 편입하여 9개명에서 11개 면으로 되었다.
 1954년 법률 제 350호 '수복지구 임시조치법'에 의하여 신남면은 인제군에 반환하여 10개 면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홍천면이 홍천읍으로 승격되면서 남면의 삼마치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다.
 이 때부터 홍천군은 1읍 9면제가 되었고, 부분적인 개편이 계속되었다. 1973년 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춘성군 동산면 북방리가 홍천군 북방면으로, 춘성군 동산면 풍천리가 홍천군 화촌면으로,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홍천군 내면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홍천군 남면 상창봉리가 횡성군 공근면으로, 홍천군 내면 미사리가 인제군 기린면으로 편입되었다.
 1983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 상오안리가 홍천읍으로 편입되었고, 10월 1일에는 그 동안 명칭에 따른 문제가 있었던 두촌면 천치리를 천현리로 개칭하였다.
 1995년에는 북방면 성동리(도심리)일부를 화촌면 구성포리에 편입하였다. 현재 홍천군은 1읍 9개 면으로 홍천읍, 화촌면, 두촌면, 내촌면, 서석면, 북방면, 동면, 남면, 서면, 내면과 모곡현장민원실로 되어있다. 홍천지역의 치안은 강원도 지방경찰청 소속의 홍천경찰서가 맡으며, 2003년부터 지구대제도로 개편되었다. 교육은 강원도교육청 소속의 강원도홍천교육청이 있으며, 소방서와 세무서는 홍천군 관내 및 양구, 인제까지 관할하고 있다. 


13-06-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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