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님의 가정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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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억 선생님의 가정교육 1

관리자 0 1,612 2020.03.31 11:14

남궁 억 선생님의 가정교육 1

첫째는 시부모의 마음과 뜻을 순순히 O음

1. 윤리상의 문제
우리 동양에 옛날 한 아름다운 법이 있으니 곧 폐백(幣帛)이라는 것이 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고자 하는 때와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뵈올 때에 반드시 폐백을 드려 두 사람이 서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정한다. 이같이 한번 정하면 다시 변하지 못하고 끝까지 정성껏 섬김으로 생명을 드리는 일까지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부터 충신열사(忠臣烈士)가 곤란과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의 명을 O다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자가 많아서 이들을 열 손가락과 스무 손가락으로 헤일 수 없다. 제자와 스승에 대한 일로 보아도 공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화를 당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지경에 있었으나 여러 제자 중 한 사람도 도망한 자가 없었다. 임금과 신하, 스승과 제자는 부자와 형제와 같이 하늘이 내려준 정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그리하겠는가. 다름이 아니라 저 두어자 비단과 한 마리 기러기나 꿩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으나 이것으로 폐백을 삼아 한번 임금이나 스승께 드리면 그날부터 두 사람이 서로 지켜야 할 도리를 확실히 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에 다시 고치지 못하고 만일 고치는 자가 있으면 자기의 시대뿐 아니라 천만대를 내려가도록 무슨 악한 이름을 얻게 되는 법이다. 이처럼 폐백의 소중함이 특별하다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조선에 혼인하는 법례를 보면 며느리되는 자가 그날에 마땅히 꿩과 대추로 폐백을 삼아 드린다. 이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이요, 각 성(姓)이 서로 모여서 부모니 자식이니 하는 명분을 확실하게 정하는 예법이다. 이 예법의 원래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명분 정하는 맹세를 나타내는 것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다 하겠는가. 동양 옛 성인의 훈계를 듣자면 부부의 의는 오륜(五倫)에 으뜸이라 하였으며 서로 공경을 다해 대우하라 하였다. 그리고 예수교회에서 서양식으로 거행하는 혼례를 보면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여 털끝만치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요즘 세태가 한번 변하더니 사람마다 자유니 법률이니 하는 것만 주장하고 윤리상 미덕과 의리는 돌아보지 아니한가. 심한 자는 두어 마디 분쟁이나 조금 어려운 살림을 참지 못하여 부부같이 소중한 명분을 저버리고 아주 염치가 없게도 이혼청원이란 소리가 입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람 속에야 어찌 시부모 같은 온전히 명분으로만 정한 윤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가정에는 욕설과 악쓰는 일이 쉴 새가 없고 나중에는 식구마다 노여움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각각 헤어져 집안이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며느리된 자여 이 어찌 두렵고 경계할 바가 아니겠는가.
세상 형편에 깜깜한 채 지내는 한평생 동안 서로 용모도 모르고 성격과 정서가 다른 각 사람이 한 집안에 모여 살 때에 어찌 자연스런 애정이 생길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윤리상으로 시부모니 며느리니 하는 명분을 한번 정하게 되면 친모녀같이 공경하고 사랑하는 예법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선가정을 살펴보면 며느리가 항상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끊임없이 나무라고 꾸짖는 시어미가 얼마나 많은가. 온 조선가정의 절반이라 하여도 심한 말이 아닐 것이다. 또 며느리가 미우니까 발꿈치가 달걀 같다는 속담을 보아도 우리 가정의 예부터 내려오는 폐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즉 세상에서 어미된 자는 거의 다 마음이 불량하여 그러함이 결단코 아니다. 며느리에게 불량하면서 남에게는 양순한 자가 허다하다. 따지고 보면 시어미가 별사람이 아니라 며느리가 자라 시어미가 되는 것이니 며느리 때에 양순하던 마음이 시어미가 되면 좋지 않게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된 이유 때문인가. 이것저것 몇 가지 이유가 있으나 다 말할 수 없고 단 한마디로 말하면 시어미 마음속에 용서라는 두 글자가 없는 까닭이다. 나의 친딸은 잘하나 못하나 온갖 허물이 사랑으로 다 묻히지마는 며느리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어찌 사람된 바탕과 타고난 성질이 완전할 수 있겠는가. 열에 한두 가지라도 내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벌써 미운 마음이 얼마큼 생기게 되고 또 일이야 크든지 작든지 한번 명령한 것이 내 뜻과 같지 못할 때 벌써 노여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훈계 비슷한 꾸지람을 하다가 나중에는 쌓이고 쌓인 노여움이 발하여 온 집안이 항상 시끄럽게 되며 심한 자는 며느리를 내쫓으니 이러하고야 그 가정에 어찌 복이 내리기를 바라겠는가. 옛말에 어리석고 귀먹지 아니하면 가장노릇 못한다 하였다. 이는 알고도 모른체하고 용서하라 함이다. 시어미된 이여, 범사에 참으라. 범사에 용서하라. 한 번 용서에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를 보전하고 세 번 용서에 온 집안의 분위기가 훈훈해질 것이니 이런 가정이야 구하지 아니하여도 어찌 복이 내리지 않겠는가.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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