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손끝이 갈라지고 터지며 뽑아내던 무궁화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손끝이 갈라지고 터지며 뽑아내던 무궁화

관리자 0 1,561 2020.03.31 11:01

남궁 억 선생 : 손끝이 갈라지고 터지며 뽑아내던 무궁화
선생이 지어 널리 유행했던 노래들이 100여 곡이나 된다. 하나같이 민족의 혼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조국애를 노래한 곡들은 그 내용이 보다 구체적이고 민족적이고 민중지향적인 선생의 사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근본 뿌리를 이 나라 5천년의 역사 속에 깊이 내리고 있다. 곡은 군가나 오페라 혹은 서양의 민요에서 빌린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역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이 노래들의 가사는 물론 곡을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많은 부분 외솔회에서 1973년 6월 23일 발행한  나라사랑 -한서 남궁억 선생 특집호-에서 선생이 지으신 노래의 가사를 찾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 부르던 곡조를 알 수가 없었다. 이때 선생이 세우신 사립모곡학교 막내둥이로 무궁화 사건 당시 2학년과 4학년쯤 되셨던 할머니 두 분을 찾아 모시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분은 내 선친과 함께 공부했던 당시의 추억을 기억하고 계셨는데 선생의 노래들을 어렵게 어렵게 외워 부르실 수가 있어서 이를 비디오로 찍고 광원교회 사모와 내 아내가 함께 곡을 살리게 되었다.
77세(1996)의 이기순, 김복순 두 분 할머니는 당시 선생이 잡혀가시고 즉시 학교가 폐교되고 새로 도리소에 세운 공립모곡학교로 옮겨다니게 되었는데, 이때 원래의 학교터에 심겨졌던 무궁화 묘목을 강제로 뽑아버리느라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나고 손톱은 다 닳아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하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통해서 전국의 사립학교와 교회 혹은 민간단체로 보내졌던 무궁화가 무려 30만주. 거의 대부분의 묘목은 홍천의 우체부가 자전거에 싣고 나가서 전국으로 보내졌는데 그때 우체부도 이런 내용을 알고 무척이나 성실하게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했다고 한다. 이때 학생들의 손끝을 피로 물들이며 뽑히어 불에 살라진 무궁화가 7만주!
무궁화는 단순히 작은 농촌 마을 이름없는 한 노인의 계몽운동이 아니라, 이 나라 5천년의 역사 속에 가장 수치스러웠던 수난의 시절 일제의 총칼과 협박과 유혹에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독립의 깃발을 세워 맞섰던 구국의 나팔소리였던 것이다.
이 나팔소리가 당시 암울했던 조국의 앞날을 밝히는 민족의 염원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아 민들레 꽃씨처럼 강산을 나르며 퍼져가니 당시 경기도 북양주군 시둔면 지금의 의정부에 살던 30대 청년 김노영은 독립을 염원하며 "가을에 아침해는 곱기도 한데 길이없이(無窮) 피인 꽃 하도 곱더니 모진바람 찬서리에 견딜 길 없어 어이없게 구슬피도 네 절개 잃었구나 가여운 꽃나무야 뿌리라도 살았다가 네 시절 돌아오면 다시 곱게 피어라" 무궁화를 노래했던 것이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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