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졸업식 축사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졸업식 축사

관리자 0 1,225 2020.03.31 10:57

남궁 억 선생 : 졸업식 축사
엄동의 추위 속에 3백리 먼길을 걸어 단 위에 오른 선생의 모습은 강당 가득한 선생과 학생들에게 말없는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기껏해야 일경의 눈과 귀를 피해 말장난이나 하는 지도자들과는 그 모습부터가 달랐다. 중절모에 단장이나 짚고 다니며 금주금연하여 성전(聖戰)에 보태자는 친일분자가 행세하는 시절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한 우표와 고전을 수집해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여기 있다고 기증해 주신 분이다. 독립협회의 수석 총무로, 사법위원으로, 편집장으로 <황성신문>을 창간했던 언론의 선구자가 강원도 산골에 내려가 무궁화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오시느라고 두루마기도 없이 3백리를 걸어 오셨다는 사실에 학생들의 눈과 귀는 그 위엄과 광채에 빨려들고 있었다.

"여러분! 내가 우리집에서 여러분을 보려고 널미재라는 높은 고개를 넘을 때 무릎이 묻히는 눈길을 걸어오면서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왔습니다. 개울길에 들어서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길이 아닌 곳으로 발자국이 났으므로 나는 그 자국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잘 아는 산길이기 때문에 원길을 찾아서 생눈을 뚫고 가며 발자국을 내어 놓아 내 뒤에 오는 사람은 내 자국을 따라서 오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이제 변변치 않은 이야기지마는 우리나라에서 여러분만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면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 정도로 불행하게도 희귀한 숫자를 가진 국보적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남이 못하는 학문을 했기 때문에 그만치 무거운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대개가 농촌에서 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정을 잘 알 줄 압니다.
교문을 나서는 여러분들이 옮기려는 발길의 방향이 어디입니까?
교육의 혜택도 문화의 헤택도 없으며 대부분이 결식 상태에서 빼빼 마르고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을 가진 그들은 목자없이 방황하고 있는데 이 어린양들을 구하려고 내 고장인 농촌으로 달려가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는 강자를 도와서 부스럭지 권세에 만족해할 것이 아니라 약자를 살려주고 같이 강한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졸업생들에게 간절한 부탁은 내가 산 속의 눈길을 걸을 때 생눈을 뚫고 원길을 찾아서 걸은 것처럼 여러분이 바로 걸어야 뒤에 따르는 사람도 바른 길을 걸을 것이니 본래의 갈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