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관리자 0 1,310 2020.03.31 10:54

남궁 억 선생 :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무궁화 묘포는 반도 산하에 오직 보리울에서만 볼 수 있다. 조국애를 포기하고 왜놈들에게 아부하는 친일배들이 기염만장(氣焰萬丈)하여 쇠가 쇠를 먹는다는 격으로 동포를 음포하던 왜정하에 감히 무궁화라는 이름조차 바로 못 부르고 근화(槿花)라고 부르던 때 선생은 무궁화 묘포를 경영했던 것이다. 묘목을 팔아서 돈을 사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위축되어 가는 애국심을 격려시키는 방법으로 학교 경비 보충을 구실로 하고 무궁화 묘목을 해마다 수십만 주씩 길러서 각 지방의 학교와 교회와 사회단체에 팔기도 하고 기증도 하여서 선생이 왜경에 체포당하던 해까지 계속했다. 묘포 작업은 학생들이 실업 시간을 이용해 김매고 거름주게 하여 학생들의 무궁화에 대한 애착심과 국화(國花) 관념을 넣어 주었다. 선생은 심경이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나아가 삼천만 민족을 북돋는 심경으로 잡초를 뽑고 벌레를 잡으며 거름도 주어 망국의 한을 위로받았다.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는 모곡학교는 문자 그대로 무궁화 동산이요, 개화 5개월 동안 그야말로 별유천지를 이뤄서 조국애를 맛볼 수 있었다.
무궁화 묘목을 못 팔게 했을 때는 뽕나무 묘포를 겸해서 흡사 무궁화 묘목은 어렸을 적은 뽕나무 묘목과 같아서 뽕나무 묘목을 지방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뽕나무 묘목 속에 끼워 넣어 보내는 등 무궁화 번식에 갖은 방법을 취했다. 뽕나무로 알고 심은 것이 자라서 무궁화 꽃이 아름답게 핀 것을 본 농가에서는 화단으로 옮기는 등 방방곡곡에 무궁화 꽃이 일본 국화 사쿠라를 대결하게 하였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라는 선전문을 인쇄하여 각 교회와 사립학교와 지우(知友)들에게 배부하였는데, 그 내용은 무궁화의 특징과 세계 각 나라의 국화를 열거하고 무궁화는 우리나라 역사와 방불한 성격이 있음을 강조했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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