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생활농촌교육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생활농촌교육

관리자 0 1,188 2020.03.31 10:53

남궁 억 선생 : 생활농촌교육

한국의 정치, 경제는 일본의 침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산다는 것이 선생이 늘 하시는 말씀이었다. 농촌에 세워진 학교로서 초급 교육부터 농촌의 실정에 맞는 교육을 베풀려는 것이 한서 선생이 이상하는 교육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풀을 베어 놓았다가 학교에 올 때는 거름풀을 한 짐씩 지고 오도록 하였고 그날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씩 해 가지고 가도록 하여 학도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주고 부지런히 일하는 정신을 길러 주었다. 아마 이러한 생활농촌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학교는 강원도 홍천군의 모곡학교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교 마당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풀짐에는 책보와 도시락이 달려 있었고 마당 한 옆에는 지게 100여 개가 나란히 몇 줄로 질서 정연하게 열을 지어 있었다. 학년별로 수업이 끝나고 한 줄씩 없어지기 시작하여 다 없어지면 학교 마당이 고요해지는 것이었다. 선생은 사재를 보충해 가면서라도 동민 개학(洞民皆學)을 주장하고 의무적으로 자제를 보내도록 권장했던 것이다. 동민들의 문화 척도가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은 한서 선생이 일경에 체포되기까지 15년 동안 농촌계몽에 헌심한 결과이다.
그 당시에는 청년들이 영서(英書)를 읽고 글을 모르는 동민이 없었으며, 한때 영어(英語) 합창단은 이 고을에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마을에 한서국민학교와 한서중학교가 있어 유지되고 있음을 보아서 그 마을의 문화 수준을 헤아릴 수 있거니와 6·25전란 때 좌경 청년이 하나도 없었음도 남궁억 선생의 특별한 교화의 영향이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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