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님의 무궁화에 대한 연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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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억 선생님의 무궁화에 대한 연구와 ...

관리자 0 1,098 2020.03.31 09:56

남궁 억 선생님의 무궁화에 대한 연구와 송덕비
선생은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을 이곳에서 치르는 가운데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심을 나타내기 위한 구심점으로 나라꽃 제정의 필요성을 느껴 이 나라 5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것으로 무궁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주력하였다. 당시 갑신정변으로 인해 미국에 망명, 에모리대학에서 수학하고 중국 상해에 머물고 있던 윤치호와 서신으로 몇 차례 의논한 결과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는 것이 옳다고 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여, 이를 알리고 무궁화에 대한 연구에 더욱 힘쓰신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처음 이곳 칠곡군수로 부임할 때만 해도 선생은 당신의 경험이나 능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여 크게 걱정했으나 워낙에 관리들의 토색이 심하여 백성의 원성이 심한 이곳을 그 성품이나 심지가 강직하고 곧은 선생밖에는 달리 갈 사람이 마땅치 않던 터라 고종황제는 당신이 신임하는 선생에게 특별히 돕는이를 붙여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황제의 기대에 부응하는 선정으로 탐관오리의 수탈과 착취로 벼랑에 몰렸던 민심을 회복하고 화합을 이루어 냈을 뿐 아니라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나라꽃을 통해 독립의 얼과 사상을 일깨우는 무궁화운동이 그 싹을 틔우게 된 것이다.
 훗날 선생의 공명정대하고 어진 선정으로 생활이 안정된 것을 고맙게 여긴 군민들은 자발적이고 대대적인 참여로 5백냥을 들여 송덕비를 세우니 이는 전무후무한 구리비로, 이 지역 유학자 배석하가 쓴  일신와만록 상권 (배석하의 일기책)에 그 비문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
병심강직(秉心剛直) 옥결빙청(玉潔氷淸)
동도창궐(東徒猖獗) 남민소경(南民騷驚)
잔멸거수(殘滅巨蒐) 애차고경(哀此孤 )
거사유독(去思愈篤) 철면기정(鐵面記情)

한편 이 시절 동학군의 규모와 세력이 점차 불어나 얼마 후에는 한양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선생은 서삼촌 남궁완 편에 한양의 어머니에게 동학군을 피해 선영이 있는 모곡으로 피신하시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아든 선생의 어머니는 서삼촌을 통해 "이는 국록을 먹고 사는 신하의 도리가 아니다. 다시 이런 말을 하려거든 차라리 죽으라"고 전하라며 엄한 꾸중을 하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만류하고 멀리하던 영어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신 어머니, 독립협회 시절 감옥에 갇힌 하나뿐인 아들에게 "절대로 굽히지 말라"고 쪽지를 넣어 격려했던 어머니가 다시 선생의 마음속에 나와 내 가정의 안일을 위해 혹시라도 저버리기 쉬운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신 것이니 이래저래 칠곡은 선생의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곳이다. 훗날 사람들이 선생을 칠곡 영감으로 불러 예우할 때도 두말없이 이를 즐겨하신 것은 이 때문이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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