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교회를 세우다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교회를 세우다

관리자 0 1,525 2020.03.31 10:48

남궁 억 선생 : 교회를 세우다
죽음으로써 항쟁하여 독립을 절규하는 동포들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반하는 길은 오직 교육밖에 없음을 깨닫고 사립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며 교육 운동이 전개될 때 모곡(보리울)에도 급선무가 교육이었다. 모곡에는 거개가 불신자로 미신이 많고 암매하였다.
신자는 김영중이라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선생은 춘천에 주재하고 있는 선교사에게 전도인을 보내줄 것을 청하는 동시에 선생의 사재 3,900환을 들여 1919년 9월에 대지를 매입하고 열 칸의 기와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동민들은 개화해야 산다 하여 너나 하고 몰려드니 예배당이 좁아서 앉을 자리가 없어 문밖에 멍석을 펴고 예배를 드리는 형편이었다. 그뿐 아니라 근동에 있는 아이들까지 모아 놓고 공책과 연필을 공급해 가며 소학교 정도의 과정을 교수하였다.
4년제의 모곡학교라는 간판을 붙이고 교회 겸 학교로 병용하여 1923년 3월에 제1회 졸업생을 내었다.

1백일을 하루같이
이학규 장로(석사교회/홍천 오안초등학교장)가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수집차 옛날 모곡학교에 다녔다는 김연태 씨의 가정에 들러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청했을 때다.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훔치면서 "우리 선생님 이야기냐! 세상천지에 그만한 선생님이 또 있겠느냐!"며 당신이 4학년까지 다녔는데 집안에 우환(전염병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주일 사이로 돌아가셨다)이 있어 어머니가 학교를 가지 못하게 하는데 선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석달열흘 꼭 1백일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에 찾아와 설득을 했다고 한다. 그때 끝내 학교를 나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어머니가 독자인 아들마저 돌림병으로 어찌 될까봐 한사코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산간벽촌에 배우기 위해 몰려든 학생들만으로도 힘에 벅찼지만 중도에서 배움을 포기해야 하는 어린 학동을 위하여 1백일을 하루같이 권하고 또 권하신 선생의 모습은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요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이었다.

학교사(學校舍)를 신축하다
한서 선생의 명망이 날로 높아지매 전한 각지(全韓各地)에서 청년들이 선생의 고결한 인격과 정신 사상을 사모하여 모여드니 적막한 산중의 조그마한 마을이 학향으로 자못 번창하였다. 일가월증(日加月增)해 가는 학생들을 수용할 만한 교사(校舍)가 시급하므로 선교부의 보조 3,000환과 홍천군 일반 민간으로부터 2,000환의 기부를 얻어 1923년 9월에 약 100여 평의 신교사(新校舍)와 기숙사를 낙성하였다.
그리고 학교 설립의 인가를 받는 동시에 기부금 모집인가를 받았다. 1925년 3월에 6년제의 사립학교로 인가를 신청하는 한편 선생이 각 지방의 유지들을 방문하며 기부금을 모집하여 교실을 확장하고 교사(敎師)를 증용(增用)하니 이때가 모곡학교로서 황금시대였던 것이다.

육영(育英)의 풍정(風情) 이모저모
매일같이 사랑과 정성으로 육영해 가는 보리울 학향(學鄕)에는 배우고 싶은 학도, 가르치고 싶은 열혈(熱血)의 스승이 진실로 민족의 혼이 살고 정기가 약동하는 아름다운 학풍을 이루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모여든 학생들 가운데는 나이가 35세나 되는 중년의 학생도 있었고 머리를 땋아내려 갑사댕기를 멋지게 궁둥이까지 축 늘어뜨린 총각들이 있는가 하면 북방망이 같은 상투에 초립을 쓴 애신랑도 있었고 통량갓을 번듯이 쓴 20대 어른 학생도 있었으며 머리를 깎은 7∼8세의 아이들도 있고 칼라를 하고 무테 안경을 쓰고 어색한 양복을 입은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도 있었다.
아직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관념에서 마을의 큰 처녀들은 가정적으로 금족을 당하고 8∼9세의 금동녀들이 배울 뿐으로 다만 키가 멀쑥한 나이 많은 처녀 하나와 쪽진 부인 하나가 이리저리 외돌면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에 청년 학도들이 가장 취미 있어 하는 과목이 영어와 한국 역사 시간이었는데 한문은 천자로 사서삼경을 통독한 학생도 있어서 문자 그대로 촌 글방도 같고 대학원도 같았던 것이다.

자료출처 :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4:4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