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무궁화 자수본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 : 무궁화 자수본

관리자 0 1,142 2020.03.31 10:09

남궁 억 선생 : 무궁화 자수본

선생은 가사 시간에도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이는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하는 길이 생활 속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심신이 매우 어려운 중에도  가정교육 ,  신편 언문체법 과 같은 책을 써서 교재로 삼으셨던 것이다. 선생의 이런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가사 시간에 고안하여 학생들로 하여 수를 놓게 한, 무궁화 자수본과 삼동주 태극기 수본이다.
"무궁화 자수본"은 우리나라 지도에 13도를 뜻하는 열세 송이의 무궁화 수를 새겨 넣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집집마다 벽에 걸리고, 혹은 선물로 미국이나 하와이 등지로 나가 특별히 부탁을 받아 수를 놓는 일까지 생길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행하기도 하여 퍼져 나가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여 누런 면 손수건에 태극기를 수놓은 삼동주(三同綢)와 함께 압수를 당하게 되어 많이 없어졌으나 이후에도 비밀리에 만들어 주고 받는 진품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나라꽃 무궁화를 제정하고 이를 통해서 독립의 얼을 심고 가꾸려 하신 선생의 유별하고 기발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의 무궁화는 매우 특별한 것이다. 자수본을 비롯하여 선생이 지으신 노래의 가사 중에 무궁화가 들어가지 않은 노래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무궁화의 특성을 들어 지으신 "무궁화 시조"와 "무궁화 놀이"(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술래잡기)에서와 같이 무궁화는 곧 조선을 의미하고,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선생이 훗날 심산유곡인 홍천군 모곡 땅 유배지와 같은 선영으로 내려가서 무궁화 묘포장을 만들고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여 전국을 무궁화 동산으로 가꾸려 하셨던 것이었으니 일명 보리울이라 불리는 홍천군 서면 모곡 땅은 서울의 생활에서 심신이 기진해진 선생이 일시 건강을 회복하고 원기를 되찾고자 내려간 피난처와 쉼터가 아니라 선생의 해박한 역사연구와 기발한 창의력의 결합으로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독립운동의 모판이 된 것이다.
선생이 보리울로 내려오시면서 지어 부르신 "기러기 노래"의 가사 속에 이러한 선생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으니 선생의 낙향은 결코 나약한 지사의 뒷걸음이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꽃 중에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매우 그릇된 생각이며, 무궁화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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