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종교교회와 남궁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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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억 선생 : 종교교회와 남궁억

관리자 0 1,168 2020.03.31 10:08

남궁 억 선생 : 종교교회와 남궁억

일한강제조약 이후 선생은 신앙에 주력하여 종교교회에 나가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선생이 종교교회에 적을 두게 된 것은 독립협회 시절부터 깊이 사귀어, 칠곡부사 시절에는 서신으로나마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하자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 나누었던 윤치호가 남감리회인 종교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이의 권유로 된 것이었다.
선생의 둘째 따님으로 윤치호의 자부가 된 자경 씨의 회상은 이때의 선생과 윤치호의 관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윤치호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곤 했고 …… 두 분이 젊어서부터 아주 가까워져 (네 딸 내 며느리하자, 네 아들은 내 사위하자) 이렇게 혼약을 하게 된 것이지요. 두 분은 똑같이 개화,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서로 의논하여 왔지만 우리 아버지는 좀더 성격이 굳고 강하신 편이고 시아버지는 보다 온건하시달까 …… 훗날 아버지 말씀이 좌옹은 젊은 마누라와 어린 아이들 때문에 뜻대로 못살아 하시면서 한숨을 쉬시더군요."

 좌옹의 권유로 종교교회에 나가 세례를 받고 입교하신 선생은 1915년 종교교회에서 '본처전도사'로 직임을 받아 남감리회의 평신도 사역자로서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열정적인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종교교회는 개화기 이 민족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지도자요 스승이 되셨던 선생의 신앙이 그 뿌리를 내리고 자란 텃밭이었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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