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님의 어린 시절

홍천자료실

남궁 억 선생님의 어린 시절

관리자 0 1,086 2020.03.31 09:53

놀라운 집중력으로
선생의 영어학교 입학은 선생의 생애를 통해 가장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영어를 배우면서 접한 기독교신앙과 서양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선생의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삶의 바탕이 마련된 것이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그것은 선생이 개화론자이면서도 개화지상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선생이 영어학교를 통해서 접했던 서양의 문화와 기독교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했던 것인가를 말해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그대로 동경하고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이를 응용하고 적용함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 혹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찾아내어 실천에 옮기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기질과 무슨 일이든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해내는 집중력과 인내심은 영어학교에 입학해서 단어와 문법을 공부하는 데 그대로 나타났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할 때 사전을 찾아 표시를 하는데 같은 단어를 세 번씩이나 표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선생은 자신의 집중력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책망하여 사전을 움켜쥐면서 분을 삭였다고 한다.
이런 열심으로 공부에 전념하는 선생의 모습은 마치 전쟁을 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추운 겨울에도 날이 밝아오도록 손을 비벼가며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했다.
그런 결과 일년이 채 안되는 단시간 내에 영어 회화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추어 함께 공부했던 이들 가운데 일등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졸업과 함께 통역을 위한 견습생으로 독일인 뮐렌도르프가 해무 사무와 외교 고문으로 있는 경성총해관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실제적인 경험과 훈련을 쌓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선생이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조선의 일꾼으로 세우는 첫발을 디디게 된 것이, 바로 이 나라 최초의 영어통역관으로 고종황제를 모시게 된 것이다. 


13-06-1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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