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살아나는 민족혼
조선민족은 무능하다는 일제의 역사교육에 맞서 우리 민족의 자주 역량을 아동들에게 심어주고자 하여 조선의 위인을 중심으로 쓰신 책이 바로 조선이야기 이다.
이 책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인찰지로 20여 부를 복사해서 비밀리에 나누어 주었다. 복사는 이기섭 씨를 시켜서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화천교회 여전도사가 찾아와 이 책을 구해갔는데, 이 책을 그 교회의 유 집사(유증서 목사의 형님)가 보물처럼 여겨 6·25를 넘기고 우여곡절 끝에 현재 감리교회의 목사로 계신 당시 그 여전도사의 아들이 소장하고 있다.
얼마 전 이 목사님이 우리 교회의 초빙으로 이곳을 다녀갔다. 당신의 어머니가 화천의 교회에서 이 책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구해 갔다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본 것이다. 화천에서 이곳 모곡리까지 지금도 차로 2시간은 달려야 하는 험하디 험한 산골마을까지 와서 이 책을 구해갔던 어머니의 속내를 읽으며 그렇게 번져가던 일제하 이 민족의 살아 움직이던 역사를 돌아본 것이다.
이 책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선생의 얼을 찾아 무던히도 애쓴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주신 분이다.
올해(97년) 77세인 이 할아버지는 춘천 남면 가정리에 사는데 모곡학교 이야기를 듣고 입학을 했는데 무궁화사건이 난 직후여서 학교는 곧 공립학교로 일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출옥해서 집에 돌아오신 선생을 찾아가서 그 하시는 말씀을 들어가며 마음속에 애국심을 가졌는데 선생이 쓰신 조선이야기 를 친척되는 이기섭 씨 댁에 가서 몰래 읽으며 선생의 애쓰시는 모습에 감화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해방 직전 다른 사람 대신 징용을 가야 하는 형편에 처하게 되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선생을 생각해서라도 일제의 전쟁에 나가 총을 들 수는 없는지라 선생의 제자로서 이 참에 만세운동이라도 벌이자 결심하였다. 모곡에서 가까운 굴업에 인연이 있어 그곳 이장더러 일본의 전쟁을 위해 이를 거드는 말을 한마디 할 테니 사람들을 모아 달라고 한 뒤 처음에는 일본의 전쟁을 치하하는듯 시작하였으나 중간에 선생의 조선이야기 를 인용하고 몰래 다리에 차고 갔던 이 책을 내보이며 일본은 반드시 망하고 조선은 독립을 할 것이라셨던 선생의 말씀을 전하고 만세를 불렀다는 것이다.
지금도 "조선지리가"를 4절까지 외워 부르는 이 할아버지는 노년의 선생이 때로는 우시면서, 때로는 시원스레 설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조선이야기 는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민족의 얼과 혼을 되살리기 위해 쓰여졌고 또 그렇게 어린 학동들의 마음속에 애국심을 되살리던 거의 유일한 일제하의 우리 역사책이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