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억 선생 : 열 세 해를 하루같이
"태평양이 가마에 물 끓듯 하리라"
이 말씀은 한서 선생이 늘 하시는 말씀이었다. 학생들이나 마을 청년들에게 "자네들 낙심말게. 나는 못보아도 자네들은 독립을 꼭 볼 것일세" 하면서 늘 격려하시고 견인불발(堅忍不拔)한 기상을 보여주며 희망에서 사시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손수 우물물을 길어다 세수를 하시고 냉수마찰을 하셨는데 세상을 떠나시기 3년 전까지 계속하였다.
이 마찰이 끝나면 곧 산(유리봉)으로 오르셔서 아직 마을은 고요히 잠들어 있는데 풀 숲에 엎드려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 불의한 일본의 압박을 물리쳐 주셔서 독립국가로서 동양의 지상낙원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같이 조르고 호소했던 것이다. 마을로 내려오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마을 청년들을 깨우며 어서 풀을 베어 오라고 독촉하고 우리가 부지런해도 못살 텐데 게을러 가지고야 어찌 살겠느냐며 농립모를 쓰시고 밤나무, 당나무 묘포로 가서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3년 동안을 하루같이 애국 단성으로 민족의 독립을 빌던 한서 선생은 1933년 11월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 갇히었다가 74세의 노쇠한 몸으로 옥중에서 병들어 보석되어 나와 77세의 일기로 민족의 독립을 못본 채 1939년 4월 5일에 영민하시니 이 부음을 들은 동포들은 애도를 금할 길이 없었다. 선생이 가신 지 2년 후인 1941년 12월 8일에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생전에 늘 말씀하신 대로 미, 영, 중, 소 연합군의 병함(兵艦)과 전투 비행기와 폭탄으로 태평양이 과연 가마에 물끓 듯하였다.
마침내 미군의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방송을 통하여 연합군 앞에 무조건 항복을 했다.
겨레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시던 유리봉 밑에는 선생의 뜻을 받들어 한서국민학교가 세워 있어 드높이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2세들이 선생의 유훈을 새기고 있다.
자료출처 : 기독교대한감리회 한서기념사업회
13-06-10 15:04